
선거가 때로는 한 편의 소극(笑劇)이 된다. 영국의 작은 해안 도시 클랙턴에서 벌어진 보궐선거가 그렇다. 머리에 금속 쓰레기통을 얹은 코미디언이 유력 야당 대표의 가장 강력한 맞수로 나섰다. 웃어넘기기엔 그 뒤에 놓인 물음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한 정치인의 재정 의혹이 어떻게 이런 진풍경을 낳았는가.
스스로 부른 선거
발단은 재정 의혹이다. 영국 우파 정당 리폼 UK의 대표 나이절 파라지는 자신의 재정을 둘러싼 의회 조사에 직면했다. 암호화폐·기술 억만장자 크리스토퍼 하본에게서 받은 500만 파운드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사의 핵심이다. 그는 7월 7일 "국민이 판단하게 하겠다"며 클랙턴 지역구 의원직을 던지고, 같은 자리에 다시 출마했다. 의혹을 정면 돌파하려는 승부수였다.
34명이 뒤엉킨 진기록
그런데 노동당·보수당·자유민주당·녹색당 등 주요 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선거를 집단 보이콧했다. "쇼에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빈자리를 군소 정당과 무소속, 풍자 후보들이 메웠다. 후보는 무려 34명으로, 2008년의 26명 기록을 깬 영국 총선거 사상 최다였다. 투표용지는 1미터에 달했다. 파라지의 가장 강력한 맞수는 머리에 금속 쓰레기통을 얹고 유세한 코미디언 존 하비, 곧 '카운트 빈페이스'였다.
'서커스'라는 조롱
8월 13일 치러진 투표에서 파라지는 2만 2,239표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X에 "클랙턴의 결과가 스스로 말해 준다"며 압승을 자평했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비평가들은 이 선거를 "서커스"라 불렀고, 약 25만 파운드로 추산되는 비용이 결국 공공 예산에서 나온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우스꽝스러운 후보를 허용하는 영국 특유의 선거 전통이 이번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웃음 뒤에 남은 물음
쓰레기통을 쓴 후보가 2위를 차지한 이 촌극은, 웃고 넘기기엔 묵직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의혹은 선거의 승리로 지워지지 않는다. 500만 파운드를 둘러싼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축제가 조롱의 무대로 바뀔 때, 정작 웃음을 잃는 이는 누구인가. 그 답을 우리는 저 긴 투표용지 어딘가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