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과 북한산 백운대 등 국립공원 곳곳에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과 독립을 염원한 흔적이 바위글씨로 남아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이들 역사문화자원을 다시 소개하고, 3차원 디지털 기록을 통해 야외에 노출된 자료의 보존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이 광복절을 맞아 국립공원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 관련 역사문화자원을 재조명했다. 대표적인 자료는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 독립염원 바위글씨, 북한산국립공원 백운대 3·1운동 암각문, 의정부시 호원동 석굴암에 남은 김구 선생 필적이다.
지리산 천왕봉 하단의 바위글씨는 1924년 7월 1일 새겨졌다. 가로 4.2m, 세로 1.9m 자연석에 약 392자가 남아 있다. 국립공원공단 자료에 따르면 한말 경상도의 유학자 묵희가 글을 짓고 권륜이 글씨를 썼다.
내용은 공자의 《춘추》에 나타난 대일통과 춘추대의를 바탕으로 당시 나라를 빼앗긴 현실에 대한 울분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역대 왕조의 흥망을 되짚으며 일제강점의 시대도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한 기록으로 설명된다.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는 3·1운동의 기억을 새긴 암각문이 남아 있다. 암각문에는 ‘독립선언기사(獨立宣言記事)’라는 제목과 함께 최남선의 독립선언서 작성, 정재용의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낭독에 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바위글씨 네 모서리에는 ‘경천애인(敬天愛人)’ 네 글자가 한 글자씩 새겨졌다.

국립공원공단 자료는 이 암각문을 3·1운동 이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재용이 직접 새긴 것으로 알려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만 조성 시기와 경위에 관한 일부 내용은 전승과 증언에 근거한 만큼 기사 발행 전 관련 사료와 연구 성과를 추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권역인 의정부시 호원동 석굴암에는 백범 김구의 필적을 바탕으로 한 암각문도 남아 있다. 자료에 따르면 김구는 1948년 석굴암을 방문해 친필을 남겼고, 언론인 남상도 등 8명이 이를 바탕으로 1949년 3월부터 약 3개월에 걸쳐 글씨를 바위에 새겼다.
새겨진 글은 ‘석굴암(石窟庵) 불(佛) 무자(戊子)중추(仲秋) 유차김구(遊此金九)’로, 김구가 무자년 가을 이곳을 찾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석굴암은 김구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몸을 숨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자료는 대부분 야외 바위에 새겨져 있어 비바람과 온도 변화 등 자연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다. 이에 국립공원공단은 2024년 지리산 천왕봉 바위글씨를 3차원으로 기록했고, 2026년에는 북한산 백운대 3·1운동 암각문의 디지털 기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도자료에 첨부된 3D 조사 결과물에는 바위 표면과 글자의 형상이 입체 자료로 기록돼 있다. 공단은 이러한 디지털 기록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할 수 있는 훼손에 대비하고 역사문화자원의 원형 정보를 남긴다는 계획이다.
주대영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은 “국립공원에 남아 있는 역사문화자원은 선열들의 뜻과 우리 민족의 기억을 담은 소중한 유산”이라며 광복절을 계기로 국립공원의 자연과 그 안에 남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함께 살펴봐 달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