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중국 AI 생성 콘텐츠(AIGC) 산업은 중요한 분기점에 진입했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AI 콘텐츠 시장은 '생산량 경쟁'이 핵심이었다.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수많은 AI 숏폼 드라마와 영상이 플랫폼을 뒤덮었다. 그러나 시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부작용을 드러냈다. 저작권 침해 논란이 확산됐고, 품질이 낮은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이용자 피로도 역시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젠왕(剑网) 2026’ 캠페인을 중심으로 AI 콘텐츠 저작권 관리와 플랫폼 책임 강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플랫폼들도 자정 작업에 나섰다. 대표적인 숏폼 플랫폼들은 대규모 콘텐츠 정리 작업을 진행하며 AI 콘텐츠 시장의 질적 기준을 재정비하고 있다.
여기서 젠왕(剑网 )이란 중국 국가판권국(国家版权局) 등 4개 부처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인터넷 저작권 침해 단속 캠페인의 공식 명칭으로 정식 명칭은 '젠왕싱둥(剑网行动)'이며, 2026년 캠페인에서는 AI 생성 콘텐츠의 '모가이(魔改, 마법처럼 고친다)', '표절·각색(洗稿)', 딥페이크(deepfake) 등 AI 관련 저작권 침해 행위를 중점 단속 대상으로 삼고 있다.
숏폼 플랫폼들이 규제 대응과 콘텐츠 정리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의 대표적인 OTT콘텐츠 플랫폼들은 전혀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AI를 통제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새로운 콘텐츠 산업 질서를 구축하는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심에 아이치이(爱奇艺)가 있다. 아이치이는 AI를 콘텐츠 제작 도구가 아닌 산업 인프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 아이치이가 발표한 일련의 정책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AI 콘텐츠를 플랫폼에 유통하는 수준을 넘어 AI 콘텐츠 생태계 자체를 설계하려는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많은 플랫폼이 AI를 제작비 절감 수단으로 접근하는 반면, 아이치이는 AI를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생산 인프라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전략으로 구현되고 있다.
첫째는 제작 지원 정책의 고도화이고, 둘째는 수익 분배 모델 혁신이며, 셋째는 AI 전주기 제작 도구 제공이다. 여기서 전주기(全周期)란 "콘텐츠의 기획부터 제작, 유통, 소비, 그리고 사후 관리까지 이르는 모든 단계"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전 과정", "전 생애 주기", 또는 "엔드-투-엔드(end-to-end)"에 가까운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개별 정책이 아니라 상호 연결된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구성한다.
또한 수익 분배 혁신으로 창작자를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아이치이가 올해 발표한 '드라마 콘텐츠 수익 분배 협력 신규 정책 2.0'은 AI 콘텐츠 산업의 수익 구조를 재설계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특히 AIGC 장편 드라마와 중편 드라마에 대해 기존 대비 1.2배 수준의 수익 보장 정책을 도입한 점은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더 주목할 부분은 단계형 수익 배분 구조이다. 누적 수익이 일정 규모를 초과할 경우 수익 배분 비율을 최대 130%까지 확대하는 구조를 마련하면서 제작사의 흥행 동기를 크게 강화했다. 이는 단순히 "좋은 작품을 만들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AI 콘텐츠 제작사들에게 "좋은 작품을 만들면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명확한 시장 신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콘텐츠 산업에서 창작자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기술이 아니라 보상 구조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현실적인 접근이다.
현재 아이치이가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분야는 AI 애니메이션이다.
최근 발표된 ‘둥만싱허(·动漫星河) AI 판쥐(番剧) 지원 계획’은 AI 애니메이션 생태계 구축을 위한 종합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둥만싱허(·动漫星河)란 '만화·애니메이션의 은하수'라는 뜻으로, 아이치이(爱奇艺)가 발표한 AI 애니메이션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의 공식 브랜드명을 말한다.
또한 판쥐(番剧)라는 말은 원래 일본어 '방송 프로그램(番組)'에서 유래한 중국어 신조어로, 중국에서는 주로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일본 및 국산)을 지칭한다. 아이치이의 둥만싱허(动漫星河) AI 시리즈 애니메이션 지원 계획(动漫星河 AI 番剧扶持计划)에서는 AI 기술로 제작된 시리즈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하고,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시리즈 애니메이션' 또는 'TV 애니메이션'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제작 지원을 넘어 투자 협력, 저작권 구매, 수익 보장, 독점 유통 등 다양한 협력 모델을 제공한다. 흥미로운 점은 제작사 규모에 따라 서로 다른 지원 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제작사는 투자와 수익 공유 모델을 통해 위험을 분산시키고, 개인 창작자나 소규모 스튜디오는 낮은 진입장벽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는 AI 콘텐츠 시장이 단순히 기술 경쟁이 아니라 전문 제작 역량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아이치이는 AI 애니메이션을 통해 단순한 콘텐츠 공급 확대가 아니라 새로운 IP 산업 육성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치이 전략의 핵심은 기술 플랫폼 ‘나더우 프로(纳逗Pro)’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더우(纳逗)란 말은 아이치이가 출시한 AI 통합 영상 제작 플랫폼의 브랜드명으로 공식 명칭은 '나더우 프로(纳逗Pro)'이며, 대규모 언어 모델(LLM), 지능형 에이전트, IP 자산 라이브러리, 디지털 자산, 창작자 커뮤니티 등을 통합 제공한다. 시나리오 작성부터 연출, 미술, 촬영, 편집, 홍보까지 영상 제작 전 과정을 지원하는 '원스톱(One-Stop) AI 창작 솔루션'이다.
나더우 프로는 단순한 영상 생성 도구가 아니다. 대규모 언어모델(LLM), AI 에이전트, 디지털 자산 라이브러리, 플랫폼 IP, 상업 협력 네트워크, 창작자 커뮤니티 등을 하나로 통합한 제작 인프라 플랫폼이다. 시나리오 작성부터 연출, 콘티 제작, 캐릭터 디자인, 영상 생성, 편집, 마케팅까지 콘텐츠 제작 전 과정을 지원한다.
이는 넷플릭스(Netflix)가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넘어 제작 시스템으로 진화했던 것과 유사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아이치이는 이제 콘텐츠 플랫폼이 아니라 AI 창작 생태계의 운영자가 되려 하고 있다.
시장 조사에 따르면 2026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는 약 20만 편의 AI 마이크로 드라마가 제작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AI가 콘텐츠 생산의 민주화를 실현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질문도 던진다. 그것은 먼저, 콘텐츠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생산량인가, 품질인가? 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현재 중국 시장은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숏폼 플랫폼들이 과잉 생산의 후유증을 정리하고 있는 반면, 아이치이를 비롯한 OTT 콘텐츠 플랫폼들은 AI를 활용해 새로운 품질 기준을 만들고 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산업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치이 사례는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AI를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닌 콘텐츠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바라봐야 한다. 둘째, 개별 AI 도구 도입보다 창작자와 제작사를 연결하는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 셋째, AI 시대의 경쟁력은 플랫폼이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느냐보다 얼마나 우수한 창작자 집단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AI 시대의 플랫폼 경쟁은 기술 경쟁이 아니다. 이제는 생태계 경쟁이다. 그리고 지금 중국에서는 그 미래를 선점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아이치이의 행보는 그 전쟁의 가장 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AI는 콘텐츠 산업을 단순히 빠르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산업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기술이 되고 있다.
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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