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의 쫑알쫑알]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다원 민주주의 사회로 우리는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의 목소리, 장애인의 목소리, 노동자의 목소리, 사회적 참사를 겪은 유가족의 목소리까지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성찰은 필요하다.
집단간 갈등은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지만, 그 갈등으로 인해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공론장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다원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조속히 해결해야 문제는 공론장에서의 평등, 자유롭지 못한 담론에 있다.
사회적 소수자는 한동안 한국 사회의 공론장에서 배제되어왔다. 소수자를 위한 법제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못했고, 법제가 조금씩 우리의 권리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회적 편견에 따른 차별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사회 구조의 개편을 위해 투쟁한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담론을 이루기 위해 도전한다. 학생 사회에서도 연대 의식을 기반으로 이와 같은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는 비단 학생 사회 일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진보화를 겪는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 아니, 진보 사회를 꿈꾸는 세계 시민의 문제라 할 수도 있겠다.
페미니즘을 예시로 들어 이야기해보겠다. 어느새 학생 사회에서의 페미니즘을, ‘고리타분한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배운사람들의 이야기’로 인식하는 학우들이 많아졌다. 필자는 페미니스트이며,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는 앨라이이며, 장애인권 수호자이며, 노동인권 옹호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 회의가 섞인 물음을 차단하고, 페미니즘의 현주소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들을 묵살하는 일부 진보 집단의 기조는 잘못이라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엘리트주의자들이 공정한 입장에서 담론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한다. 페미니즘이 대세인 사회에서도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공정한 입장에서, 적어도 대화에 있어서는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죄의식의 속박에서 벗어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담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단, 공론장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혐오표현도 용납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첫째, 서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반박이 오가는 과정에서 반인권적인 가치관은 스스로의 모순을 깨닫고 가치관을 수정할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반인권적인 가치관이 민중의 지지를 얻게 될까 두려운 것이 문제라면, 우리는 직접 나서서 그것이 공론장에 등장하는 것을 막지 않더라도 담론의 과정에서 반인권주의자들로 하여금 사상의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반인권적이라고 여겨지는 담론의 주제를 우리가 차단하기 시작한다면, 어느샌가 그러한 발언 차단의 선례들이 다시 화살로 돌아와 우리의 발언을 제한할 위험이 있다.
둘째, 그 어떠한 사상도 견제와 성찰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성찰 하지 않는 사상은 타락하기 쉽다!
나는 엘리트주의자 그리고 안티 페미니스트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그 사상을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제3의 권력에 의한 폭력(사회적 차별, 편견)의 피해자가 된다면, 난 그들의 편에서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 사회에는 정말정말, 너무너무, 아주아주 많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정의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토론의 장을 만들고, 대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은 정치가 아닐까?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소수자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담론에 대한 권리를 지금껏 외쳐온 우리가 아닌가! 소수자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담론을 위해 평등과 자유라는 담론의 대원칙을 어기는 것은 옳지 않다.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의 생각을 점검하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공유하여 합의점을 찾는 것이 우리 공론장의 목적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담론이 불가능해지면, 우리는 건강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 [글쓴이:김수민은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