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의 쫑알쫑알]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부자가 양보하는 것이 맞을까, 빈자가 포기하는 것이 맞을까? 재분배와 관련된 논의에서 항상 충돌하는 두 가치가 바로 부자들의 ‘자유’와 빈자들을 위한 ‘평등’이다.
고소득층은 부자 증세 등의 재분배 정책을 비롯한 자신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자유 경쟁이 허용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의 축적을 막고 강제적으로 재분배하려는 것은 민주적 가치에 위배된다.”
부자들이 추구하는 ‘자유’는 빈자들의 ‘자유'와 얼마나 다르기에 빈자는 갈수록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민주적 질서에 대한 존경심은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서만 공동의 의제가 결정되는 불합리한 사회체제에 반하여 사회적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분제가 철폐되고 모두가 공정한 정치적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주사회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력’에 의한 사회 계층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경제력이 미약한 계층은 소외받고 있다.
보다 단순하고 낮은 층위의 임금불평등의 정도보다 그 축적성이 더 짙은 자산불평등 현상이 심각한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이 뿌리깊게 박혀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소득층은 그 기득권을 더욱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소외계층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여러 복지 정책이 시행 중에 있다. 또한 이러한 사회권을 법률을 통해서도 보장하고 있지만 복지 정책은 늘 자유를 내세우는 고소득층의 저항을 받기 쉽다.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의 완화가 어려운 이유는 복지정책도 법률도 아닌 헌법에 명시된 자유의 가치를, 재분배에 대한 저항의 근거로 삼는 부자들의 논리에 있다. 무엇이 그들의 논리를 천하무적으로 만들었을까?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해볼까?(이어질 내용은 사실상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가장 근원적이고도 본질적인 견해가 될 것이다) 일제로부터 독립하고, 군부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를 이룩하였음에도 한국은 부끄러운 역사를 단 한 번도 깔끔 시원하게 청산한 적이 없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의 원인으로 복지 정책의 미흡이랄지, 노동조합과 좌파정당 연합체의 전략적 실패랄지, 따분한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과 정치경제학자들의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 완화 실패의 원인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가장 원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정치 전략과 연합체의 형성도 성공할리 만무하다. 예를들어, 1970년대부터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불평등 지표를 수집해서 발표하는 Luxembourg Income Study(LIS)는, 15~64세 경제활동인구를 가구주로 둔 가구들을 대상으로 소득불평등을 조사한다.
이 조사를 기반으로 Lane Kenworthy와 Jonas Pontusson은 80년대에서 90년대의 소득 불평등 트렌드를 연구하였는데, 고용률의 성장이 소득불평등 완화에 크게 기여하는 듯 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 입안자들은 고용률 성장을 불평등 완화의 대책으로 내놓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는, 결국 고용의 주체는 자본을 가진 고용주들일텐데, 그들에게 나름의 유인책을 제공한다 할지라도 이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고용주들이 그들이 손해를 보는 한계선 이상으로 고용을 늘리려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정말이지 답이 없다.
글의 첫머리에서 이야기한 부자들의 ‘경제적 자유’와 빈자들의 ‘경제적 평등’이 마치 시대를 초월한 러닝머신 위에서 싸우고 있는 모양새다! 빈자는 부자에게 마땅한 양보를 요구하고, 부자는 빈자에게 마땅한 포기를 요구하면서….
따라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불평등 완화에 실패한 이유를 물었을 때, 사회제도적, 정책적인 부분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은 더이상 실효성이 없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설득하여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에 앞서, 세대를 걸쳐 이어져 온 반민족 행위, 정경유착 행위 등으로 축적한 부당한 자산과 이를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훼손된 민주적 질서에 대해 논해야 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한 채로 얼렁뚱땅 엉망진창 처리된 선례들이 너무나도 많아, 그리고 그런 선례들이 적폐로써 우리 사회를 꽉 쥐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해결을 위한 그 어떤 개혁의 시도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과거 청산을 통해 민주적 질서를 조금씩 바로잡으며 우리는 ‘정의'에 대한 인식을 범국민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정의 되찾기 운동에 대한 시민적 요구와 그에 따라 강성해진 여론의 힘만이 사회 구조를 조금씩이나마 변혁시켜갈 수 있을 것이다.
일개 23살 청년의 제언: 사회불평등 완화는 곧 적극적 재분배를 의미한다. 확실한 재분배를 위해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서야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진심을 다한다면, 진심들이 모인다면, 현행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세대에 걸쳐 어지럽혀진 민주적 질서를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평등' 의식을 되살린 활발한 복지 제도를 구상,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사회 구조를 진정한 '평등'의 개념에 맞게 개혁해 나갈 수 있다.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평등을 겪은 동포들과 달리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일제의 하수가 되어 부당한 부를 축적한 자들의 자산을 빈자들에 대해 재분배를 이루어야하고, 군부독재 시기에 부당한 부를 축적한 자들의 자산도 이와 마찬가지로 재분배하여야한다.
이는 단순히 해당 자산에 대한 재분배 효과만을 거두기 위함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재분배 질서를 정의롭게 재설정 하기 위함이다. 또한, 향후의 복지 정책들이 활발히 제정될 수 있도록 경험적 기반과 선례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초점은 늦게나마 부당하게 축적된 자산을 재분배하는 것에 두어야 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함이 분명하다.
Ken Scheve와 David Stasavage의 2010년 연구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소득세 80퍼센트 인상(부자증세)이 가능했던 이유는, 민주당 정부가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활용하여 부자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효과적으로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며 징병제가 실시되었다. 고소득층의 경우 그들이 부를 이용하여 자제들을 징병 추첨 리스트에서 부당하게 배제시켰다.
따라서 전사를 하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의 자녀와 흑인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관해 민주당 정부는 고소득층의 부정의함을 지적하였고, 2차 대전의 결과 군수 산업 발전 등으로로 얻게 될 엄청난 소득을 이야기하며, 고소득층의 사회에 대한 보상과 기여의 책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을 던졌다.
이에 부자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최근 바이든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미국사회에서 2,000만명이 일자리 잃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대부분은 저소득층이지만 고소득층은 다시 소득이 상승하고 있어 재난의 효과가 불평등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바이든 정부는 고소득층에 대한 부자 증세를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국의 부자 증세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강력히 시행해나가야 한다. 지금껏 부당하게 축적된 고소득층의 자산에 대한 재분배 담론은 셀 수 없이 많이 이루어졌고, 논의되어 왔다. 친일파재산귀속법이 가결되어 현재 특별법제로 마련되기까지 했으나, 친일파 후손 중 대부분이 재산을 이미 처분하거나 해외로 도피하여 시행이 많은 난관에 봉착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현재 바이든 정부의 부자 증세 프레임 제시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꾸준히 그것이 정부 차원이 되었든, 언론 차원이 되었든, 시민 단체 차원이 되었든, 이러한 프레임을 꾸준히 제시하여 여론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앞서 말했듯, 필자는 ‘정의 되찾기 운동’에의 시민의 힘을 믿는다. 부정의 청산에 대한 시민 의식 확대와 그 시민적 요구는 정부, 언론, 시민 단체 등으로 하여금 재분배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프레임을 제시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야 하는 우리는, 부당한 부를 축적한 고소득층의 자산에 대한 사회적 청산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쓸쓸한 고민: 내가 만약에 부자였다면, 지금처럼 부자증세를 주창할 수 있었을까?
[글쓴이:김수민은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다]







